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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전각소개

정보왕스마트보라 2024. 6. 18. 23:19

경희궁전각 소개 

 

경희궁전각 소개   _ 흥화문

경희궁전각 소개
경희궁전각 소개

경희궁전각에 있는 경희궁 정문이라고 불리는 흥화문이라는 것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의 귀한 유형문화유산이다.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받은 것은 아주 큰 의미가 있다. 이전에는 어디를 보고 있었냐면 금천교의 동쪽과 오늘날의 구세군빌딩이 있던 터에서 동쪽을 향해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제감정기 시절인 1932년에 이토히로부미를 위해 마련된 사당 박문사 정문으로 사용하기 위해 흥화문을 가져가버렸습니다. 광복이 된 이후 박문사라는것이 폐지된 뒤에 그 터에 무엇이 들어셨냐면 신라호텔이 들어서고 신라호텔의 정문으로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천구백 팔십팔년에는 경희궁의 복원사업의 한 프로젝트로 흥화문을 이전 경희궁에 있던 자리인 경희궁터로 옮겼는데 원래 있던 자리에는 구세군빌딩이 건축되어 있어 옮길 수가 없어 지금 있는 자리로 이동시킨 뒤에 복원작업을 완료하였습니다.

 

경희궁전각 소개   _금천교 

경희궁전각 소개
경희궁전각 소개

경희궁의 정문이라고 할 수 있는 흥화문을 통해 들어오면 궁전 안의 전각에 들어서기 전에 있던 금천이라는 천에 있던 돌다리를 의미합니다. 난간에 있는 돌로 조각된 짐승들이나 홍예 사이의 도깨비 모양을 한 얼굴은 대궐 바깥에 창궐해 있는 나쁜 기운이 궐 내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준비되었다는 상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천육백십구년 즉 광해군 11때 건립되었는데 이것을 일제가 매몰시켜버렸지만 대한민국 서울특별시는 이천일년에 발굴을 해내여 발견된 예전의 석조물을 토대로 작업을 해 지금의 모습과 같이 복원을 마쳤습니다.

 

경희궁전각 소개   _숭정전

경희궁전각 소개
경희궁전각 소개

 

숭정전이란 것이 무엇이나면 경희궁에 있던 정전으로 국왕과 신화들이 아침조회 등 다양한 조회시간을 갖거나 궁중 연회 또는 사진들을 접대하기 위한 등 다양한 공식 행사들을 행하던 장소입니다. 그중에서 특히 경종과 정조 그리고 헌종의 세 명의 임금들을 이 숭정전이라는 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숭정전은 경희궁의 창건공사 초기때인 천육백십팔년의 광해국 10경에 정명의 5칸 그리고 측면의 4칸의 규모로 건립이 완료되었습니다. 하지만 일제감정기때 일제가 경희궁을 망가뜨리면서 천구백이십육년에 이것의 건물이 일제의 절에 팔려버렸는데 지금은 동국대학교 정각원이란 곳에서 쓰여지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숭정전은 경희궁의 터의 발굴을 통해 알게 된 위치게  돌을 이용하여 다시 재건축하였습니다. 숭정전의 안쪽 당가라는 곳에는 용상을 비치해두었는데 용상의 후면에는 곡병과 일월오봉병이라는 것을 위치시켰고 천장은 우물 모양으로 용 두마리가 서로 눈을 마주치고 있는 모양의 조각이 있습니다. 

 

경희궁전각 소개   _자정전

경희궁전각 소개
경희궁전각 소개

자정전이라는 것은 경희궁 편전입니다. 편전이 무엇이냐면 왕과 신하들이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회의를 하거나 경연을 펼치거나 하는 등 다양한 공적인 업무를 수행해 오던 장소입니다. 숙종이 돌아가신 뒤에는 빈전이라는 용도로 쓰였으나 선왕의 물건을 임시로 갖고 있는 공간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천육백십칠년부터 천육백이십년까지 세워진 자정전입니다만 이 역시도 비통하게도 일제감정기때 일제에 의해 망가졌었습니다.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는 이 또한 발굴을 해내어 알게 된 터에 서궐도안에 오늘날의 건물을 재건해 두었습니다. 자정전의 서쪽에는 발굴을 한 행랑 바닥으로 쓰인 것으로 보이는 전돌을 찾았기 때문에 그 때 발굴했던 때의 모습을 그대로 두며 재건했습니다. 

 

 

경희궁전각 소개   _서암

경희궁전각 소개
경희궁전각 소개

서암은 경희궁전각의 모양이 이상한 바위돌입니다. 위치는 태령전 뒤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바위의 안에는 암천이라고 하는 샘이 있습니다. 이상한 모양과 신기한 샘 때문에 역사적으로 예전부터 경희궁에서 유명했습니다. 원래 별명 또는 이름은 왕암 이라는 이름이었습니다만 이 이름때문에 광해군이 경희궁을 해당 위치에 올렸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천칠백팔년 숙종34에 이 바윗돌의 이름을 서암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숙종이 바위에 글자를 새기게 했습니다. 오늘날에능 서암이 새겨진 사방석이라는것은 국립고궁박물관이라는 박물관에서 소장허고 있습니다.